당신과 당신의 연구

2025년 7월 3일

Richard W. Hamming, J. F. Kaiser1 (기록), 이광근 (번역)

이 글은 이광근 교수님의 번역본을 가져와 읽기 편하도록 오/탈자 수정 및 의역을 거쳤음을 밝힙니다.

역자의 말이광근: 이 글을 인터넷에서 만났다. 2008년 1-4월 CMU 방문중 이었다. 여러가지로 마음을 움직였다. 나의 석박사 과정 학생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 영어를 뉴앙스까지 쉽게 전달하고 싶었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글을 읽었으면 했다. 번역을 결정한 배경이었다. 내가 몸담았던 벨 연구소(Bell Labs)의 바로 그 장소(Murray Hill)의 일들이어서 생생히 전해졌다. 내가 겪은 속 내용을 추임새로 각주에 첨가했다. (2008.03.20)
기록자의 말

J. F. Kaiser : 벨 커뮤니케이션즈 리서치(Bell Communications Research)[^3] 콜로퀴엄 시리즈에서 벨 연구소의 연구원이셨고 지금은 캘리포니아 해군 대학원 교수로 계시는 리차드 해밍(Richard W. Hamming) 박사가 흥미롭고 자극적인 강연을 해 주셨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연구(You and Your Research)“라는 제목이었고, 200명의 벨코아(Bellcore) 연구원과 방문객들로 그 강연은 초 만원이었습니다. 장소는 모리스 리서치 및 엔지니어링 센터(Morris Research and Engineering Center)였고 1986년 3월 7일이었습니다.
이 세미나의 주제는 “왜 소수의 과학자들만 중요한 공헌을 하고, 다른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결국에는 잊혀지고 말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해밍 박사가 관찰한 것과 연구한 바를 전해 주는 자리였습니다. 해밍 박사는 40년 넘는 세월동안, 그 중에서 벨 연구소에서의 30년 경험동안, 직접 목격했었고, 묻고 다녔고 (과학자들이 무엇을 어떻게 왜 어느 작업을 하게 되는지), 알아보고 다녔고 (대단한 과학자들의 인생과 그들의 공헌들에대해서), 그리고 창의적인 게 뭘까를 반추해보고 그 이론을 연구해오셨습니다. 이 강연의 내용은 위대한 과학자들의 성질, 능력, 경향, 일하는 습관, 자세, 그리고 철학등에 대해서 해밍 박사께서 알게된 것들에 대한 것입니다.

이 강연 내용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강연의 녹음테이프를 면밀히 텍스트로 재 구성한 것이 이 글입니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의 내용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늘 그렇지만, 현장에서 전달되는 목소리나 제스처 등등에서 오는 많은 정보들이 텍스트 기록으로 변하면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 아쉬운 점 입니다. 이 강연의 그러한 면을 경험하려면 녹음된 것을 들어봐야만 할 것입니다. 해밍 박사의 발표는 또렷히 모든 것이 녹음되었지만, 나중에 질의 응답시간의 질문들은 잘 녹음이 되지 않았습니다. 잘 들리지 않은 질문들에 대해서는 제가 괄호 안에 내 추측에 기반해서 재구성 해 놓았습니다. 질문자를 내가 아는 경우는, 내가 추측한 질문 내용이 맞는 지를 일일이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리차드 해밍 박사의 소개

벨 커뮤니케이션즈 리서치 콜로퀴엄 시리즈의 강연자인 캘리포니아의 미해군 대학원 교수로 계시는 리차드 해밍(Richard W. Hamming) 박사가 알랜 치노웨쓰(Alan G. Chynoweth)에 의해 소개되었습니다. 알랜 치노웨쓰는 벨 커뮤티케이션즈 리서치의 응용연구담당 부소장입니다.

알랜 치노웨쓰: 안녕하십니까 동료 여러분. 그리고 오늘같은 아주 경사스런 자리에 벨 연구소에서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 오신 우리의 옛 동료들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께 저의 아주 아주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리차드 해밍, 우리끼리의 호칭으로는 딕 해밍(Dick Hamming) 박사를 소개하게 되서 정말 너무 기쁩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들에게는 따로 상기시킬 필요가 없겠지만, 딕은 수학과 컴퓨터과학 분야에서 전대미문의 위대한 업적을 낸 분중의 한 분입니다. 시카고와 네버라스카에서 교육을 받았고, 일리노이2에서 박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2차대전 중에 로스앨러모스 프로젝트3에 참여하셨었습니다. 그 후 1946년에 벨 연구소에 부임하셨고, 여기서 제가 딕을 만났습니다, 그때 저는 물리연구부에 부임했었고요. 그 시절에 물리 그룹 사람들은 같이 점심을 먹곤 했었는데요, 무슨 이유인지 수학연구부에 있는 이 이상한 친구가 우리랑 항상 같이 먹는걸 좋아했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그와 같이 점심 먹는 걸 즐거워했었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진부하지 않은 많은 아이디어와 관점들을 전해줬었기 때문이었어요. 그 점심시간들은 자극적이고 활기가 넘쳤었습니다, 확실히 말씀드리죠.

우리의 연구와 직장생활이 그렇게 가깝지는 못했지만, 저는 항상 벨 연구소 복도에서 딕을 알아볼 수 있었고 그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항상 엄청난 경외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기록이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과들을 자세히 이야기하기는 너무 리스트가 길지만, 예를 들어서 이렇습니다. 책을 일곱 권을 쓰셨습니다. 그 일곱 권들이 수학, 컴퓨터, 코딩, 정보이론 등에 대한 것들이고, 그 중 세 권은 이미 두 번째 편집본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게 딕 해밍의 풍부한 성과와 위업를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그를 만난게, 근 10년 전으로, 아일랜드의 더블린에 있었던 흥미로운 작은 규모의 학술모임에서였습니다. 우리 둘 다 강연자로 있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그는 엄청 재미있었습니다. 그가 내놓는 자극적인 생각들 중 하나의 예를 더 들면, 그가 말하던 게 기억납니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광선들이 있어요.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들이 있지요. 아마도 컴퓨터는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 거에요.” 글쎄요, 딕 해밍이 여기 있으니, 우린 컴퓨터가 필요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생각못했던) 정말로 재미있는 강연에 우리 모두 빠지게 될 겁니다.

발표: “당신과 당신의 연구”

리차드 해밍(Richard W. Hamming)

여기 있으니 참 좋습니다. 제가 소개된 대로 그 정도로 살아내는 사람인지는 모르겠군요. 제 이야기의 제목은 “당신과 당신의 연구” 입니다. 연구를 관리하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어떻게 각자의 연구를 하는 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연구 관리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아니고, 이번 이야기는 여러분 같이 연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일상적인, 그냥 하면 나오는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고, 대단한 연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대단한 연구를 앞으로 종종 노벨상감 정도의 연구라고 하겠습니다. 꼭 노벨상을 타야하는 종류의 것들이라기 보다는 그 정도로 우리가 중요한 업적이라고 받아들이는 연구들 말입니다. 굳이 들어보라면, 상대성이론, 섀넌(Shannon)의 정보이론, 등등 부지기수의 뛰어난 이론들, 이런 종류의 것들을 말하는 겁니다.

근데, 내가 어쩌다 연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연구하게 되었냐고요? 로스앨러모스에 내가 불려가서 했던 일이 그 곳 사람들이 막 시동 걸어 놓은 컴퓨팅 장치들을 운영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그곳의 과학자들과 물리학자들이 본연의 일로 돌아갈 수 있도록요. 내가 일종의 꼭두각시나 하급 인력이라는 걸 알았지요. 외모는 똑같았지만 나는 그 사람들과 다른 사람이었지요. 대놓고 이야기하면, 내가 좀 질투가 났습니다. 왜 그 사람들이 나랑은 다른지를 알고싶었지요. 파인만(Feynman)을 아주 가까이서 봤습니다. 페르미(Fermi)와 텔러(Teller)를 봤습니다. 오펜하이머(Oppenheimer)를 봤습니다. 한스 베테(Hans Bethe)를 봤습니다. 한스 베테는 내 상사 였지요. 많은 수의 굉장한 능력맨들을 봤습니다. 일을 해내는 사람들과 아마도 해낼수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의 차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벨 연구소로 올 때, 내가 소속된 연구 부서에서는 연구 결과를 왕성히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보드(Bode)가 당시 부서장이었습니다. 섀넌(Shannon)이 그 부서에 있었고, 그 외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계속 질문들을 했지요, “왜?”, “그 차이가 무엇일까?” 그리고는 인물서, 자서전을 읽었고, 사람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되었나요?” 차이점들이 뭔지를 알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바로 그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근데, 왜 이 이야기가 중요하냐고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내가 아는 한, 여러분 각자는 살아갈 인생이 오직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윤회를 믿더라도 윤회는 현세에서 내세으로 넘어가면서 해주는 좋은 일이 전혀 없어요. 이 하나뿐이 인생에서 중요한 일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또 뭐예요? 중요한 일이 뭐라고 정의되던지간에, 내가 그 정의를 하지는 않겠습니다만 - 내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그리고 과학에 대해서만 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내가 공부해왔던 것이 그것이니까요. 그러나 내가 아는 한,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이야기 해 주던데, 내 이야기는 다른 많은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뛰어난 작업은 다른 분야에서도 거의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하지만, 나는 과학에 대해서만 한정 짓겠습니다.

운이 중요한 요소인가?

여러분을 개별적으로 대하기 위해서, 편하게 일인칭으로 말하겠습니다. 여러분, 겸손한 건 내려놓고 스스로에게 말해보세요, “그래, 나는 최고의 일을 하고 싶어.” 미국 사회는 진짜 훌륭한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에게는 인상을 찌푸리게 됩니다. 훌륭한 일을 하겠다고 하게 되는 게 아니야, 운이 좋으면 그렇게 되는 거야, 운이 맞아야 위대한 일을 하게 되는 거지.

글쎄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건 좀 멍청한 겁니다. 내가 말하지요. 뭔가 중요한 일을 하겠다고 나서지 말아야 할 이유는 또 뭐예요? 다른 사람들에게 대놓고 이야기 할 필요는 없지만, 스스로에게는 이야기해야 되는거 아니예요? “그래, 나는 뭔가 중요한 일을 하고 싶어.”

다음으로는 내가 내 겸손을 내려놓고, 내가 목격하고, 내가 했고, 내가 들은 것들을 일인칭으로 직접 이야기하지요. 사람들 이야기를 할 것인데, 그 중 몇 명은 여러분들도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부탁하건데, 여러분들이 내가 여기서 했던 말들을 내가 했다고 나가서 말하지 않을 거라고 믿겠습니다.

논리적으로 시작하기보단, 심리적으로 접근해 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과학의 성취는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이게 제일 큰 장벽입니다. 그 모든 게 운만 좋으면 되는거야.

글쎄요, 아인슈타인을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훌륭한 다양한 일을 그가 해 냈는지 보세요. 모두가 단지 운이 좋아서 그랬던 건가요? 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계속해서 좋은 일을 해낸 게 아닌가요? 섀넌을 보세요. 오직 정보 이론만 한게 아닙니다. 정보 이론을 만들어내기 몇 해 전에도 좋은 일을 해 냈어요. 그 중에 어떤 것들은 아직까지도 암호학의 보안 속에 단단히 묻혀있습니다. 섀넌도 좋은 일들을 많이 했지요.

이런 현상을 반복해서 목격하게 됩니다. 잘하는 사람들은 한 가지만 성취한 게 아니지요. 때로는 한 사람이 일생에 한 가지만 해내는 경우도 있지요. 이런 경우에 대해서는 내가 나중에 이야기하지요. 하지만 많은 경우 한 사람이 좋은 성과를 계속 반복해서 이루어냅니다. 운이 모든 것을 커버하지 않아요. 파스퇴르(Pasteur)가 이야기했다잖습니까, “행운은 준비된 마음을 선호한다.” 내가 믿는 바를 그대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운은 있기는 있습니다, 하지만 없어요. 준비된 사람은 빠르게 중요한 것을 발견하고 훌륭한 일을 해냅니다. 그래요, 그게 운이예요. 특정 일을 하게 되는 건 운일 겁니다, 그러나 뭔가를 해내는 건 운이 아니지요.

예를 들어, 내가 벨 연구소에 왔을 때, 섀넌과 한동안 연구실을 같이 썼습니다. 그 때가 섀넌이 정보이론을 연구할 때였고, 나는 코딩이론을 할 때였지요. 뭔가 신기하지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우리 둘이 그 훌륭한 일들을 하고 있었다는 게. 분위기에 뭔가 신기한 것이 있었어요.

여러분은 말할지 모릅니다, “그래요, 그게 바로 운이라니까요!” 근데 한편으론 이렇게 말할 수도 있어요, “왜 그 당시 벨 연구소의 모든 연구원들 중에서 바로 그 두 사람이 그 일을 하고 있었던걸까?” 그래요, 부분적으로는 운이지만 다른편으로는 바로 준비된 사람들이었던 겁니다. 그 “다른편으로는"에 대해서 바로 내가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내가 운이라는 것에 대해서 몇 번 더 이야기는 하겠지만, 운이 있고 없고가 위대한 일을 할 수 있고 없고를 결정한다는 것이라는 의견은 내다버리겠습니다. 내 주장은 위대한 일을 할 수 있고 없고는, 우리가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통제할 수 있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이와 관련해서 뉴턴이 한 말을 인용하지요. “만일 다른 사람들이 내가 한 만큼 열심히 생각했다면 그들도 비슷한 결과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위대한 과학자의 공통점

여러분이 보게 되는 특징 중 하나는, 훌륭한 과학자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때 독립적인 생각을 가졌고 그것을 추구할 용기를 가졌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은 12세이나 14세 무렵쯤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내가 빛의 속도로 움직이면서 빛의 파동을 본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전자기 이론에서 정지된 지역 최대값(local maixmum)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맥스웰 방정식). 하지만 만약 빛의 속도로 함께 움직인다면, 지역 최대값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12, 14세 쯤에 이런 모순을 알게 되었던 겁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고, 빛의 속도에는 뭔가 특이한 점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특수 상대성 이론을 만들어 낸 것이 운일까요? 어린 시절부터 그는 조각드을 생각하면서 그 일부를 이미 놓아두었던 겁니다. 이것은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제가 이야기할 모든 것들은 ‘운’이기도 하고 ‘운이 아닌’ 것이기도 합니다.

굉장히 좋은 두뇌를 가지는 거요? 좋죠, 이 방에 있는 여러분 대다수가 아마도 일류급 연구를 하기에 충분한 두뇌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위대한 작업은 단순히 두뇌말고 그 이외의 뭔가입니다. 두뇌는 다양한 방식으로 재볼 수 있지요. 수학이나 이론 물리, 천문학에서 필요한 두뇌는 기호를 다루는 능력과 상당히 관계됩니다. 그래서 전형적인 아이큐 테스트는 그런 두뇌에 높은 점수를 주지요.

다른 분야에서는 또 다릅니다. 예를 들어, 빌 팬(Bill Pfann)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존 멜팅(zone melting)이라는 분야를 일군 사람입니다. 그가 어느날 내 연구실로 왔었습니다. 그가 원하는 바에 대해서 희미하게 아이디어가 있었고 어떤 방정식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수학은 잘 모른다는 게 내게 분명했지요. 그리고 그는 그렇게 썩 명료하게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그가 가지고 온 문제가 재미있어 보여서 집에 가지고 와서 약간 살펴보고 작업해 봤지요. 최종적으로 그에게 어떻게 컴퓨터를 돌리면 그가 바라는 방식의 답을 얻을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에게 계산하는 능력을 전수해 준 것이지요. 그는 계속 진행했고요. 그의 부서에서는 거의 알아주지도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국에는 그는 그 분야의 모든 상을 휩쓸었습니다. 한번 시작이 잘 되니까, 그의 소극적인 부끄럼, 이상스러움, 명료하지 못함 등은 모두 떨구어지고 여러 방면으로 굉장히 많은 성과를 내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엄청나게 명료해지기도 했고요.

비슷하게, 또 다른 사람의 예가 있습니다. 여기 청중 중에 없다고 믿는데요. 클럭스톤(Clogston)이라는 친구입니다. 내가 그를 만난건 내가 존 피어스(John Pierce)의 그룹에서 어떤 문제를 풀고 있던 때였습니다. 나는 그가 별 볼일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와 같이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에게 물어봤지요. “대학원 때도 쟤는 저랬냐?” 그들 대답은 “예스"였지요. 나는 아마도 그 친구를 해고했을 겁니다. 그러나 피어스는 현명하게도 그를 계속 멤버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클럭스턴은 결국에는 “클럭스턴 케이블"이라는 것을 해 냅니다. 그 이후로는 꾸준히 좋은 아이디어들이 흘려 나왔지요. 하나의 성공이 그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가져다 준 겁니다.

성공적인 과학자의 특징 중 하나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용기가 북돋워지면 중요한 문제들을 풀 수 있다고 믿게 되고 그러면 해내게 됩니다.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 거의 분명히 못하게 됩니다. 용기는 섀넌이 엄청나게 가지고 있던 특징들 중의 하나지요.

그의 주요 이론을 상기하면 됩니다. 그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코딩의 방법을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무작위로 코딩합니다, 그리고 벽에 부딫칩니다. 그리고는 불가능한 질문을 합니다, “무작위 코드들이 평균적으로 하는 일이 뭘까?”

그리고는 그는 증명합니다. 평균 코드는 아무렇게 해도 좋은 코드다. 그렇다면, 그러므로 좋은 코드는 적어도 하나는 존재한다. 이런 식의 생각들을 감히 할 수 있다는 것이 무한대의 용기를 가지지 않고서는 누가 할 수 있는 생각이겠어요? 이게 바로 위대한 과학자들의 성격입니다. 용기를 가지고 있지요. 믿기지 않는 상황에서도 계속 갑니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계속 생각합니다.

나이는 중요한가?

물리학자들이 특히 걱정하는 것이 나이라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항상 이야기하지요. “젊었을 때 연구를 해내야지 그러지 못하면 영원히 못해.” 아인슈타인이 아주 젊었을 때 일을 해냈고, 양자물리 이론가들도 최고의 연구를 할 때는 꽤 젊었을 때였습니다. 대부분의 수학자, 이론물리학자, 천문물리학자들은 그들이 젊었을 때 우리 생각에 최고의 일들을 해냈죠. 그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서는 좋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고 우리가 제일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들이 대개 젊었을 때 일찍이 이룩한 결과라는 겁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음악, 정치학, 문학에서는 우리가 최고로 여기는 작업들이 대개 노년에 이룬 것들입니다. 여러분의 분야마다 이렇게 다른 스케일에 어떻게 맞춰질지는 모릅니다만, 나이가 뭔가 작용하긴 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야기해 보지요, 나이가 왜 그런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우선 훌륭한 일을 하면 온갖 종류의 위원회에 참여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지요. 노벨상을 받은, 내가 봐 온 브랫테인(Brattain)같이 되는 겁니다. 노벨상이 발표되던 날 우리는 모두 아놀드 강당에4 모였습니다. 세 명의 수상자들이 모두 일어나서 한 마디씩 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이 브랫테인이었습니다. 거의 눈물을 눈에 머금고 말했지요, “나는 이 노벨상이 어떤 효과를 가지는 지를 알고 있습니다. 나는 절대 이 상이 나에게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나는 예전 모습 그대로 월터 브랫테인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흠, 내가 혼자말로 말했습니다, “좋은데.” 그러나 몇 주 안 가서 그 상이 그를 변화시키는 것을 보게되었지요. 그는 커다란 문제에 대해서만 연구할 수 있게 되었지요.

유명해지면 조그만 문제를 연구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이게 바로 섀넌을 잡아먹은 거지요. 정보이론 이후에 다음으로 또 한 건 뭘 할까? 위대한 과학자들이 이러한 실수를 합니다. 시작을 작게 하지 못하게 됩니다. 미래에 엄청난 아름드리 참나무로 자라게 될 아주 작은 도토리를 심지 못하는 것이지요. 처음부터 커다란 것을 곧바로 하려고 듭니다. 그런데 이것은 일이 되는 방식이 아니랍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일찌감치 인정을 받으면 그 이후로는 아무 성과가 없게되고마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사실 내가 오랫동안 좋아하는 인용거리를 이야기를 해 주지요. 프린스턴의 고등연구원이 내 의견으로는 좋은 과학자들을 망쳐놓은 케이스입니다. 훌륭한 연구자들을 키운 어느 연구소보다도 더 많이 망쳐놨지요. 좋은 과학자들이 고등연구원에 온 이후로 좋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이미 고등연구원에 오기 전에 엄청난 성과를 가지고 있었지만 온 이후로는 그냥 좋은 정도였지 계속 엄청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연구 환경이 중요한가?

이 이야기 때문에, 순서가 뒤바뀐 듯 하지만, 연구하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겠네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연구환경은 최고의 연구환경이 아닙니다. 분명히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주 있는 일인데, 사람들이 연구 성과가 제일 좋은 때는 연구 환경이 나빴을 때입니다. 케임브리지 물리학 연구실(Cambridge Physical Laboratories)이 좋았던 시절 중 하나는 연구실들이 그야말로 판자집이었을 때 였습니다. 그때 그들은 지금까지 중 최고의 물리학 성과를 일구어냈지요.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요. 처음부터 내게는 벨 연구소가 내게 프로그래머들을 붙여주지 않을 것이라는 게 분명했어요. 2진수로만 컴퓨터 프로그램을 하던 당시로서는 그런 프로그래머들이 항상 있어줘야 일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근데 당시 벨 연구소에서는 내게 그런 편의를 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지요. 그런데 그게 모든 연구원들이 하는 방식이었어요. 그런 지원이 갖춰진 서부로 직장을 옮겨가서 비행기 회사에 취직하는 것? 문제없었죠. 하지만 벨 연구소에는 흥분되는 동료들이 있었지만 비행기 회사에는 없었지요.

한참 생각했지요, “내가 원하는 것이 가는거냐 마는거냐” 그리고는 내가 두 세계의 최고로 좋은 점 만을 모두 가질 수 있는 방안이 뭔지를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리고는 마침내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해밍, 네 생각에 컴퓨터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럼, 컴퓨터가 바로 프로그램을 짜도록 만들 수 없겠냐?” 처음에는 단점으로 보이던 것이 나로 하여금 자동 프로그래밍을 일찌감치 궁리해 보도록 만들었던 겁니다. 맹점으로 보이던 것들은 대게 관점을 바꾸면 우리가 가진 최고의 자산 중 하나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처음 맞닥뜨리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게 되고 대게 하는 말은 이렇죠. “이런, 충분한 프로그래머는 내 곁에 없을 거고, 이 상황에서 내가 훌륭한 프로그램을 짠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이나 하냔 말야.”

같은 종류의 이야기는 많이 있습니다.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주의깊게 살펴보면 알게 될 겁니다, 위대한 과학자들은 자주 문제를 약간 돌려놓고 봄으로써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버립니다. 예를 들어, 많은 과학자들은 어떤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왜 그런지를 살펴보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돌려보고, “하지만 물론, 이게 바로 그게 그런거지(But of course, this is what it is)” 그러고는 중요한 성과를 일궈냅니다. 이상적인 연구 환경이라는 것은 참 묘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연구 환경은 우리에게 항상 최고의 연구 환경인 건 아닙니다.

추진력

이제 연구를 밀고나가는 추진력에 대해서 말하지요. 대부분의 위대한 과학자들이 엄청난 추진력이 걸려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는 벨 연구소에서 존 튜키(John Tukey)와 10년동안 같이 있었습니다. 엄청난 추진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벨 랩에 부임하고 3-4년이 지나서 하루는 그가 나보다 조금 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존은 천재였고 나는 분명 그렇지 못했지요. 내가 보드(Bode)의 연구실로 가서 말했지요, “아니, 존 튜키만큼 지식이 풍부할 수 있는게 어떻게 내 나이의 사람한테서 가능한거예요?” 의자를 뒤로 젖치면서, 손은 머리뒤로 놓고, 슬쩍 웃더니, 하는 말이 “해밍, 너는 놀랄것이다. 그 나이까지 그가 한 만큼 열심히 공부하면 네가 얼마나 많이 알게 되는 지 깨닫는다면.” 그리고 보드의 연구실에서 그냥 꼬리내리고 슬금슬금 기어나왔답니다.

보드가 말하던 것은 이겁니다. “지식과 연구 생산성은 복리와 같은 거다.” 거의 같은 능력의 두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한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10% 더 공부한다고 해요. 그러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2배의 더 연구결과를 만들어 낼 겁니다. 더 알면 알 수록 더 많이 배우게 됩니다; 더 많이 배울 수록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되고, 더 많이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기회는 더 많아집니다. 복리와 아주 비슷하지요. 이자율을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무튼 굉장히 높은 이자율이지요. 완전히 같은 능력의 두 사람이 있다고 하면, 매일 생각을 1시간 더 하게되면 평생 엄청나게 더 많은 연구결과를 낼 겁니다. 나는 보드의 말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몇 년간은 좀 더 열심히 더 많은 시간을 연구에 투자하려고 노력했지요. 그러니 알게 되더라고요, ‘내가 한 일이 좀 더 많구나.’ 내 아내 앞에서는 말하고 싶지 않지만, 때로는 아내가 안중에도 없었었습니다; 나는 공부하는 게 필요했어요. 우리가 원하는 바를 이룰려면 많은 것들을 무시해야하지요. 이와 관련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연구를 밀고나가는 추진력에 대해서 에디슨이 말하지요, “천재는 99%의 땀과 1%의 영감이다.” 그는 아마 과장이었겠지만, 핵심은 튼튼한 일을 꾸준히 해가면 놀라울 정도로 멀리 나가게 된다는 겁니다. 조금씩 더 노력을 꾸준히 현명하게 해가면 일을 이루게 되지요. 문제가 그겁니다, 현명하게 하기. 추진력를 잘못 적용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거. 자주 궁금해 했지요, 왜 그 많은 벨 연구소의 내 친구들은 나만큼 혹은 나보다 많이 열심히 일했는데 자랑할 만한 게 그만큼 없었어요. 왜 그럴까. 노력을 잘못된 곳에 적용하는게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단순히 열심히 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아요. 센스 있게 열심히 해야지요.

애매함

또 다른 특징을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데요, 그건 애매함(ambiguity) 입니다. 애매함의 중요성을 알게되는 데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것이 사실이거나 사실이 아니거나 둘 중의 하나를 믿고 싶어하지요. 위대한 과학자들은 애매한 것을 참 잘 참습니다. 이론을 충분히 믿어서 밀고 가지요; 또 의심도 충분히 하기 때문에 오류나 헛점을 발견하고 한 발짝 더 가서 새로운 바꿔치기할 이론을 만들어냅니다. 너무 많이 믿으면 실수를 보지 못합니다. 너무 많이 의심하면 시작도 못하고요. 기가 막힌 균형을 필요로 합니다. 대부분의 위대한 과학자들은 왜 그들의 이론이 사실인지를 잘 알고 있고, 그리고 또 약간의 잘 맞지 않는 부분도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을 잊지 않습니다.

다윈이 자서전에 썼지요, 자기가 믿는 내용과 모순되는 모든 증거들을 일일이 기록하는게 필요하다고요. 그러지 않으면 머리 속에서 없어질 것인다고요. 명백한 헛점을 발견하면 민감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점들을 기록하고, 그런 점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혹은 어떻게 이론을 바꾸어서 그것들을 수용할 수 있는지, 그런 것들이 자주 위대한 공헌이 되는 겁니다. 위대한 공헌은 있던것에 조금 덧붙이는 것을 하면서는 만들어지기가 드믐니다. 마음 속으로도 혼신을 다해야 되는 겁니다. 대부분의 위대한 과학자들은 그들의 문제에 완전히 몰두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눈에 띄는 일류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건 드뭅니다.

무의식

그런데, 혼신의 노력을 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필요조건인 건 분명합니다. 그리고 내 생각에 왜 필요한지는 얘기해 줄 수 있을것 같아요. 창의성을 연구한 사람들이 모두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창의성은 무의식에서 나온다.” 어쩐 일인지, 갑자기 거기 있는 겁니다. 그냥 나타나는 겁니다.

글쎄요, 우리는 무의식에 대해서 아는게 거의 없습니다. 근데 한 가지 잘 알고 있는 것은 꿈들이 우리의 무의식에서 나온다는 거지요. 잠잘 때 나타나는 꿈이 뭔지를 알지요, 그날 있었던 경험들이 다시 재구성된다고, 상당히 알고 있지요. 문제에 깊이 몰두하고 혼신을 다해 임하면, 날마다 날마다, 무의식이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어지지요. 그래서 어느날 아침 일어나서는, 혹은 어느날 오후에, 답이 나타나 거기 있게 되는 겁니다.

현재의 문제에 혼신으로 열심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무의식이 다른 일에 바보같이 시간쓰게 되면서 큰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진짜 중요한 문제가 있으면 어떤 다른 것도 신경쓰지 않도록 하고 그 문제에만 매달려서 생각을 집중하세요. 무의식이 다른게 없어서 굶도록, 그래서 그 문제에 무의식이 생각할 수 밖에 없도록. 그러면 편하게 자고 아침에 일어나 답을 얻는 겁니다. 공짜로.

내 분야에서 중요한 문제들은 무엇인가?

알랜 치노웨쓰(Alan Chynoweth)가 내가 물리학자들 점심 테이블에 껴서 먹었다고 했잖아요. 그 전에는 수학자들하고 같이 먹었어요 그런데 내가 이미 수학의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사실 내가 배우는게 많지 않더라고요.

물리 테이블은 그가 말한대로 아주 신나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내가 꽤 많이 공헌했다고 하는데 조금 과장을 한 거라고 봅니다. 샤클리(Shockley), 브랫테인(Brattain), 바딘(Bardeen), 제이비 존슨(J. B. Johnsone), 켄 맥케이(Ken McKay) 등등 다른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는게 아주 재미있었어요, 많이 배웠고요. 그러나 불행하게도 노벨상이 닥친겁니다, 그리고 다들 승진이 되고, 그리고 남은 것은 그렇지 못한 나머지들이었요. 아무도 남아있게 된 사람들에 흥미가 없었지요. 글쎄, 그 사람들과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유용한게 없더라고요!

식당의 다른 쪽에 화학자들이 모이는 테이블이 있었어요. 그 중 한 사람인 데이브 맥콜(Dave McCall)과 일했었던 적이 있었지요. 더군다나 그는 당시에 우리 비서와 어떻게 해보려고 그랬었고요. 내가 가서 말했지요, “같이 껴도 될까요?” 안된다고 말 못하죠, 그래서 한동안 화학자들과 같이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내가 묻기 시작했어요, “그 분야에서 중요한 문제들이 뭡니까?” 일주일 정도 후에는, “지금 어떤 중요한 문제를 연구하고 있습니까?” 또 좀 지나서는 하루는 “연구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면, 그리고 중요한 뭔가로 연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왜 벨 연구소에 있는 당신이 그것에 대해 연구하는 거지요?” 그 이후로는 나를 환영하지 않더라구요. 다른 사람을 찾아서 점심을 먹어야 했어요. 그게 봄이었어요.

가을에, 데이브 맥콜이 복도에서 나를 붙잡더니 “해밍, 니가 한 말이 나의 폐부를 쑤시더라. 여름 내내 생각해 봤어, 뭐가 내 분야에서 중요한 문제인지를. 내 연구를 바꾸지는 않았는데” 하면서 말하기를 “내 생각에 그 질문에 대한 고민이 꽤 가치 있었던 것 같더라.” 난 “데이브, 고맙다” 라고 하고 갔지요. 다음 몇 달 후에 내가 안 것은 그가 부서장으로 승진을 했더라고요. 그리고 또 공학학술원 회원이 되더라고요. 성공하더라고요. 그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 중에 그 이외에는 어떤 이름도 과학이나 그 사회에서 이름이 거론되는 걸 듣지 못했어요. 그들은 스스로에게 묻지 못했던 겁니다. “내 분야에서 중요한 문제가 무엇일까?”

중요한 문제를 연구하지 않으면 중요한 연구결과를 만들게 되지 않죠. 완전히 당연하지요. 위대한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분야에서 중요한 많은 문제들을 면밀하게 깊이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공략해 볼 지를 궁리하는 데에 시선을 집중합니다.

경고하지요, “중요한 문제"가 뭔지는 조심해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내가 벨 연구소에 있을 때 물리에서 어떤 면에서 보면 세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그건 절대 연구되지 않았어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은 노벨상은 기본이고, 상금도 마음대로 부를 수 있을 만큼 대단한 것이겠네요. 그렇죠? (웃음)

우리가 연구하지 않았던 세 가지 문제는 (1) 시간 여행(time travel), (2) 순간 이동(teleportation), 그리고 (3) 반중력(antigravity) 이었습니다. 이것들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공략할 지 단서가 없어요. 문제가 중요하다 아니다는 그 예상되는 결론이 중요하다 아니다가 아니고, 우리가 말이 되는 공격의 단서가 있냐 없냐는 겁니다. 이게 문제를 중요하게 만드는 겁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중요한 문제를 연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입니다. 대개의 과학자들은, 내가 얘기할 수 있는 한, 대부분의 시간을 중요할 거라고 믿지도 않고 중요한 문제로 발전할 거라고 믿지도 않는 문제를 연구합니다.

아까 참나무들로 자라게 될 도토리를 심는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뭔가가 일어날 듯 한 곳에서 활발히 있을 수는 있지요. 위대한 과학이 운에서 온다고 믿더라도 번개가 내리치는 산꼭대기에 서있을 수 있어요; 안전한 계곡으로 내려와서 숨어있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보통의 과학자들은 거의 항상 안전하고 늘 하는 연구를 하죠. 그래서 별로 만들어내는게 없어요. 그렇게 간단한 겁니다. 위대한 일을 하고 싶으면 중요한 일을 해야 하고, 그리고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어야지요.

위대한 생각의 시간

존 튜키나 다른 사람들한테 자극받아서, “위대한 생각의 시간(Great Thoughts Time)“이라고 내가 부르는 것을 마침내 실천에 옮기게 되었어요. 금요일 정오에 점심 먹으러 가서는 위대한 생각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만 하겠다는 겁니다. 위대한 생각은 이런거지요.

“AT&T5 전체에 있는 컴퓨터들의 역할은 무엇일까?”

“컴퓨터가 과학을 어떻게 바꾸게 될까?”

예를 들어, 그 당시 내가 목격한 바, 10개의 실험이 이루어진다면 9개는 실험실에서 되고 있었고, 한 개는 컴퓨터에서 되고 있었지요. 부사장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앞으로는 반대가 될 것이다. 즉, 9개의 실험이 컴퓨터에서 일어날 것이고 1개가 실험실에서 일어날 것이다.’ 부사장들은 내가 미친 수학자라고, 현실 감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알았지요. 나는 그들이 틀렸다고 알고 있었고요.

그들이 틀렸고 내가 맞았지요. 그 사람들은 컴퓨터가 필요 없던 시절에 실험실을 세운 사람들이지요. 나는 컴퓨터가 과학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걸 봤습니다. 왜냐면 내가 늘 의문을 가지면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지요, “컴퓨터가 과학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그리고 내가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내 자신에게 물었지요 “그게 어떻게 벨 연구소를 바꿀 수 있을까?”

위의 얘기를 할 때 한번은 내가 그랬어요. 내가 떠나기 전에 벨 연구소의 반 이상의 사람들이 컴퓨터와 긴밀히 이런저런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여러분 모두 컴퓨터 터미널을 지금 가지고 있지요. 나는 열심히 생각했어요. 내 분야가 어디로 갈지를, 그리고 기회는 어디에 있게될지를, 그리고 무엇이 할만한 중요한 일인지를. ‘내가 그곳으로 가겠다. 그래서 내가 중요할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그곳에 있도록.’

대부분의 위대한 과학자들은 많은 중요한 문제를 알고 있습니다. 10개에서 20개 정도 그들이 공략할 문제들을 가지고 있지요.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을 목격하면 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음, 그게 이 문제와 관련되는거야.” 모든 다른 것을 내려놓고 탐구해 들어갑니다.

핵분열 (2등)

자, 이제 하나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누가 제게 해준 얘기인데, 진짜인지는 장담 못 하겠습니다. 공항에서 로스앨러모스 출신 친구랑 얘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그때 우리가 얘기한 건 이거였죠. “다행히도 핵분열 실험이 그때 유럽에서 먼저 일어났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곧바로 원자폭탄 개발을 시작할 수 있었지.”6

그랬더니 그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니야. 버클리에서도 이미 데이터는 다 모아놨었어. 우린 그냥 그 데이터를 분석하지 않았을 뿐이야. 새 장비를 만들고 있었거든. 근데 우리가 그 데이터를 제때 분석했더라면, 핵분열을 먼저 발견했을 거야.” 핵분열의 증거가 그들의 손 안에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그걸 추적하지 않았어요. 결과는? 2등이었습니다. 그들은 놓친 거죠.

위대한 과학자들은 기회가 찾아오면 바로 뛰어듭니다. 그 기회를 붙잡고 끝까지 쫓아가죠. 다른 일들은 모두 내려놓고, 그 아이디어 하나에만 몰두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 문제를 충분히 생각해봤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준비되어 있어서, 기회가 보이면 바로 움직이는 거죠. 물론 많은 경우엔 잘 안 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 성공할 필요는 없습니다. 몇 번만 제대로 맞히면 훌륭한 과학을 할 수 있거든요. 사실 이게 꽤 쉬운 일입니다. 그 비결 중 하나가 뭔지 아세요? 오래 사는 겁니다! (웃음)

다른 특징은, 내가 이걸 알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는데요. 연구실 문을 열고 연구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 이런게 있더라고요. 연구실 문을 닫고 연구하는 사람들은 오늘 내일 많은 일을 하게 되고,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연구성과가 많아요. 그러나 10년이 지나면 어찌된게 무슨 문제가 의미있고 연구할 가치가 있는 지를 모르게 되요.

한참 열심히 하는 모든 것들이 중요성에서 보면 소소한 것들이되요. 연구실 문을 열고 연구하는 사람은 온갖 걸로 연구가 자꾸 방해되지만 때때론 실제 세상이 어떤건 지 그리고 뭐가 중요할 지를 알아가게 되는 거죠.

뭐가 원인이고 뭐가 결과인지는 제가 증명할 수는 없어요, 이렇게도 얘기할 수 도 있으니까요, “닫혀 있는 문은 닫혀있는 마음의 상징"이라고요. 모르겠어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관련이 매우 있다는 겁니다. 연구실 문을 열어놓고 연구하는 사람이 궁극적으로 중요한 일들을 하는 사람이더라고요. 문을 닫고 연구하는 사람은 더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기는 하지만요. 어쨌든 그런 사람들은 약간 잘못된 문제를 파는 것 같아요. 많이는 아니고요 약간, 명성을 얻기에는 부족할 만큼.

일반화의 중요성

다른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지요. 여러분이 많이 아는 노래 가사입니다. “무슨 일을 하느냐가 아니에요, 어떻게 하는가예요(It ain’t what you do, it’s the way that you do it).” 제 경험을 하나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한 번 디지털 컴퓨터, 그것도 완전히 이진법만 쓰던 초기 시대에, 최고의 아날로그 컴퓨터들도 풀지 못한 문제를 맡게 되었습니다. 속아서 떠맡은 셈이었죠. 근데 저는 답을 얻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곰곰히 생각해보며 제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해밍, 이건 군 관련 작업이야. 많은 돈을 썼으니, 보고서를 제출해야 할 거고, 모든 아날로그 설치 기관들은 그 보고서를 읽고 결점이 없는지 확인하려 할 거야.” 그런데 제가 사용하던 적분 방식은, 솔직히 말해 형편없었습니다. 그래도 답은 나오고 있었죠.

하지만 그때 깨달았습니다. 이 문제의 목적은 단지 답을 얻는 게 아니었습니다. 처음으로, 그리고 의심의 여지 없이, 디지털 기계로 아날로그 컴퓨터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진짜 과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풀이 방법을 완전히 다시 생각하고, 우아하고 깔끔한 이론을 만들어냈습니다. 계산 방식도 바꿨죠.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습니다. 최종적으로 발표된 보고서에는 나중에 몇 년간 “해밍의 미분방정식 적분법(Hamming’s Method of Integrating Differential Equations)“으로 알려지게 된, 그 우아한 방법이 소개되었습니다. 지금은 약간 구식이 되었지만, 한동안은 매우 훌륭한 방법이었죠. 문제를 약간 바꾸고 나서야, 저는 단순한 일이 아니라 중요한 연구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초기 시절 다락방 위쪽에 있던 컴퓨터를 사용할 때 저는 문제를 하나씩, 또 하나씩, 계속해서 풀고 있었습니다. 꽤 많은 문제들이 성공적으로 해결되었고, 몇몇은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금요일, 하나의 문제를 마친 뒤 집에 돌아갔는데,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울했죠. 인생이 끝없는 문제들의 연속처럼 느껴졌습니다 — 하나 해결하면 또 하나, 또 하나.

꽤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한 끝에 저는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그래, 나는 변화 가능한 제품을 대량 생산해야 해. 눈앞에 있는 문제 하나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내년 한 해 동안 맞닥뜨릴 모든 문제를 대비해야 해.”

질문을 바꾸었을 뿐인데, 결과는 전과 같거나 오히려 더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방식 자체를 바꿨고, 덕분에 더 중요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도전했습니다 — 어떻게 하면 나는, 어떤 문제들이 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내년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이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다음에도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까? 그리고 저는 뉴턴의 법칙을 따르려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죠. “내가 남들보다 더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거인의 어깨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의 발을 밟고 서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의 작업은 다른 사람들이 그 위에 더 쌓아올릴 수 있도록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그래, 나는 누구누구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더 멀리 볼 수 있었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과학의 본질은 축적(cumulative)입니다. 문제를 약간만 바꾸어도, 단지 괜찮은 일을 넘어서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개별적인 문제를 공격하기보다는, 저는 한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 앞으로는 어떤 문제가 하나의 문제 유형을 대표하는 경우가 아닌 한, 다시는 개별 문제만을 풀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수학자라면 잘 아시겠지만, 일반화하려는 시도는 종종 해법을 단순하게 만들어줍니다. 종종 멈추어서 이렇게 말해보세요. “이건 그 사람이 원하는 문제지만, 이건 분명 어떤 유형의 전형이야. 그렇다면 나는 이 개별 문제보다 훨씬 우월한 방식으로 전체 문제군을 해결할 수 있겠군, 왜냐하면 나는 이전에 불필요한 세부사항에만 매몰되어 있었으니까.” 이처럼 추상화(abstraction)의 과정은 종종 문제를 단순화해줍니다. 그리고 저는 해결한 방법들을 잘 정리해두고, 미래의 문제들에 대비했습니다.

이 부분을 마무리하면서 여러분께 이런 말을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서툰 일꾼일수록 도구를 탓합니다. 진짜 유능한 사람은 주어진 도구를 가지고도 일을 해내며, 최선의 해답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께 제안하고 싶습니다. 문제를 바꿔보는 것, 사안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여러분의 최종 생산성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해낸 일 위에 다른 사람들이 더 쌓아갈 수 있게 만들 수도 있고, 혹은 다음 사람이 사실상 똑같은 일을 다시 반복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세일즈

이제 매우 불쾌한 주제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겁니다 — 일을 잘해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일을 ‘팔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판매(selling)’라는 말은 과학자에게 참 어색한 개념입니다. 매우 보기 싫고, 마치 해서는 안 될 일처럼 느껴지죠. 세상은 우리가 무언가 위대한 일을 하면 그것을 알아보고 환영해줘야 마땅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 일로 바쁩니다.

여러분이 한 일을 남들이 주목하게 만들고, 자신들의 일을 잠시 제쳐두고 여러분의 작업을 살펴보고 읽고 나서 “그래, 이건 훌륭했어.”라고 말하게 만들 정도로 제대로 전달해야 합니다.

제가 하나 제안드리자면, 학술지를 펼쳐서 페이지를 넘길 때 여러분이 어떤 글은 읽고, 어떤 글은 그냥 넘기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Physical Review나 그 외 어떤 학술지에 글을 쓸 때는, 독자들이 페이지를 넘기다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멈춰서 여러분의 글을 읽도록 써야 합니다. 그들이 읽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아무런 인정도 받지 못할 겁니다.

‘판매’에는 세 가지 기술이 필요합니다.

예전에는 ‘백룸 과학자(back room scientist)’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회의에서는 조용히 있다가, 결정이 내려진 3주 뒤에야 “우리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이렇게 했어야 했습니다”라는 보고서를 제출하곤 했죠. 그러나 이미 늦었습니다. 회의 한가운데, 뜨거운 논의가 오가는 그 자리에서 “우리는 이런 이유로 이렇게 해야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즉흥적이고 실전적인 소통 능력도, 준비된 발표만큼 중요합니다.

저 역시 처음 시작했을 때는 발표하면서 실제로 몸이 아플 정도였고, 엄청나게 긴장했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 내가 유창하게 발표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내 경력 전체가 크게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요.

IBM에서 처음으로 저를 뉴욕에 초대해서 저녁 강연을 부탁했을 때, 저는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좋은 강연을 해야겠다. 기술적인 발표가 아니라, 사람들이 진심으로 듣고 싶어하는 넓은 주제의 강연을 하자. 그리고 끝에 그들이 마음에 들어 하면, ‘언제든 원하시면 다시 오겠습니다.’ 하고 조용히 말하자.”

그 결과, 저는 제한된 청중에게 여러 차례 발표할 기회를 얻었고, 발표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어떤 방식이 효과적이고 어떤 방식은 비효과적인지 직접 관찰하고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회의에 참석하는 동안 저는 한 가지 주제를 꾸준히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논문은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 반면, 대부분의 논문은 그렇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기술적인 분들은 대체로 매우 제한적인 기술 발표를 선호하십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청중은 훨씬 더 폭넓고 일반적인 내용, 다시 말해 개요와 배경 설명을 원하시며, 발표자가 제공하려는 것보다 더 많은 맥락을 듣고 싶어 하십니다. 이로 인해 많은 발표들이 효과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발표자는 주제를 언급한 뒤 곧장 자신이 해결한 세부적인 내용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청중 중 그 내용을 따라가실 수 있는 분은 아주 적습니다. 그래서 발표자는 먼저 왜 이 문제가 중요한지를 설명하고, 전반적인 그림을 그려드린 다음,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를 간략하게 설명해 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더 많은 분들이 “아, 저건 조가 한 일이군요.” 혹은 “메리가 저걸 했다고요? 이제야 그게 어떤 맥락에 있는지 알겠네요. 정말 잘 설명해 주셨네요. 메리가 한 일을 확실히 이해했습니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발표를 준비하실 때에는 보통 매우 제한적이고 안전한 방식으로 내용을 구성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발표는 대체로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많은 발표가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서, 오히려 핵심이 흐려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판매(selling)’라는 개념이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중간 정리

이제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셔야 합니다. 저는 모든 것이 운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일정 부분 운이 작용한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저는 파스퇴르의 말, “운은 준비된 마음을 선호한다"라는 문장을 깊이 공감하며 따르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해온 방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수년 동안 매주 금요일 오후를 오직 “위대한 생각의 시간"으로 정해두었습니다. 이는 곧 제 시간 중 10퍼센트를, 이 분야에서 더 큰 문제 — 즉,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은 중요하지 않은지를 파악하는 데 할애했다는 의미입니다.

초기에는 저 자신도 “이게 중요하다"고 믿으면서도, 일주일 내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분명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정말로 어떤 일이 중요하다고 믿는다면, 왜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던 것일까요? 저는 결국, 목표를 바꾸거나 아니면 제가 하고 있는 일을 바꿔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하던 일의 방향을 바꾸었고, 제가 중요하다고 믿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언제나 중요한 일을 할 수는 없나요?

이제 여러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내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지 않느냐.“고요. 처음 시작할 때는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성과가 나기 시작하면, 결과를 요구하는 사람이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아지게 되고, 어느 정도 선택할 권한도 생기게 됩니다. 물론 완전히 자유로운 건 아닙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상사를 설득하는 문제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저는 셸쿠노프(Schelkunoff)라는 상사가 있었는데, 그는 지금도 저의 아주 친한 친구입니다.

어느 날, 한 군 관계자가 저에게 와서 “금요일까지 답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미 제 컴퓨터 자원을 다른 과학자들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데 사용하고 있었고, 중요한 짧은 문제들을 한창 해결 중이었습니다. 그 군 관계자는 금요일 업무 종료 시간까지 그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안 됩니다. 월요일에 드리겠습니다. 주말 동안 작업할 수 있으니 지금은 할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제 상사인 셸쿠노프에게 가서 “금요일까지 꼭 처리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셸쿠노프는 “그 문제를 꼭 처리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저는 셸쿠노프에게 “왜 제가 꼭 해야 하죠?”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알겠습니다, 세르게이. 하지만 당신은 (저와 함께) 금요일 오후에 이 분이 그 문을 나서는 걸 보기 위해 사무실에 앉아 있을 것이고, 늦은 버스를 타고 집에 갈 것입니다.

결국 저는 금요일 늦은 오후에 그 군 관계자에게 답을 넘겼습니다. 그리고 셸쿠노프 사무실로 찾아가 앉았죠. 그 사람이 나갈 때 저는 “보십시오, 셸쿠노프 씨, 이분은 제가 답을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들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월요일 아침, 셸쿠노프가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주말에 출근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 사람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아니요.”라고 답했습니다. 왜냐하면 출근 기록을 남겨야 했기에 거짓말을 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 사건 이후로 셸쿠노프는 “네가 마감일을 정해라. 그리고 그 마감일을 바꿀 수도 있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이 한 번의 교훈으로 저는 상사에게 왜 제가 탐색적 연구를 밀어내는 큰 일들을 하고 싶지 않은지, 왜 모든 연구용 컴퓨팅 자원을 흡수하는 급한 일을 맡지 않는 것이 정당한지 이해시킬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작은 문제들을 많이 계산하는 데 자원을 쓰고 싶었던 것입니다.

초기에는 컴퓨팅 용량이 제한적이었고, 제 분야에서는 “수학자는 기계를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 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더 많은 컴퓨팅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다른 분야의 과학자들에게 “아니요, 컴퓨터 용량이 부족해서 못합니다.”라고 말할 때마다 그들은 불평했습니다. 그러자 저는 그들에게 “부사장에게 가서 ‘해밍이 컴퓨터 용량이 더 필요하다’고 말하세요.”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위층에서 “당신 부하가 컴퓨터 용량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는 이야기가 여러 차례 돌았고, 결국 저는 더 많은 컴퓨팅 자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또 하나 했던 일이 있습니다. 컴퓨터가 막 도입되던 초창기 시절, 제가 소중한 프로그래밍 자원을 외부에 빌려줄 때였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프로그래머들이 받아야 할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논문을 발표하실 때, 프로그래머에게 감사를 표하지 않으신다면 앞으로 저에게서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실 겁니다. 이름을 밝혀서 그 프로그래머에게 감사하십시오. 그 사람은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후 저는 몇 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어느 해, Bell System Technical Journal(BSTJ)에 실린 논문들을 1년치 살펴보며, 몇 퍼센트의 논문이 프로그래머에게 감사를 표했는지 직접 세어보았습니다. 그 데이터를 들고 상사에게 찾아가 말했습니다. “이게 벨 연구소에서 컴퓨팅이 맡고 있는 핵심 역할입니다. 만약 BSTJ가 중요한 학술지라면, 컴퓨팅도 이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상사를 설득할 수 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가능합니다. 오늘 이 강연에서 저는 조직의 아래쪽 시점에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방식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고위 경영진이 어떤 생각을 하든 관계없이,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방법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도 여러분의 생각을 ‘판매’하셔야 합니다.

노력이 그만한 가치를 할까?

그리고 이제 마지막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훌륭한 과학자가 되기 위한 노력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보셔야 합니다. 겸손함을 걷어내고 솔직한 답을 이끌어내면, 대부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한 일류 연구를 해내고, 그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만큼 짜릿한 기쁨은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와인, 여성, 음악이 모두 어우러진 것과 같습니다.” 여성이 그렇게 느끼는 경우라면, “와인, 남성, 음악이 어우러진 기쁨”이라고 하겠지요.

그리고 상사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그들 역시 다시 돌아와 보고서를 요구하거나, 무언가 발견의 순간에 간접적으로나마 참여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이십니다. 물론 종종 방해가 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런 모습은, 결국 그분들도 그런 경험을 다시 해보고 싶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물론 이건 제한적인 조사입니다. 저는 한 번도 위대한 업적을 이루지 못한 분들에게 “어떻게 느끼셨습니까?”라고 직접 물어볼 용기를 낸 적은 없습니다. 편향된 표본일 수는 있지만, 저는 여전히 이 길이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확신합니다. 진정으로 일류의 연구를 해보려는 노력, 그 자체가 가치 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진짜 가치는 결과보다도, 그 과정 속의 치열한 분투에 있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스스로를 성장시키기 위한 투쟁 — 그것이야말로 스스로에게 가치 있는 일입니다. 성공이나 명성은, 제 생각에는, 그저 거기서 따라오는 ‘배당금’ 같은 것일 뿐입니다.

왜 실패하는가?

지금까지 저는 여러분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이렇게 쉬운 일이라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그 많은 재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실패하는 걸까요?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지금도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벨 연구소 수학부에는 저보다 훨씬 더 유능하고 뛰어난 역량을 지닌 분들이 적지 않게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분들 중 많은 분들이 저보다 적은 결과물을 내셨습니다. 물론 저보다 훨씬 더 많은 업적을 낸 분들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섀넌 같은 분은 저보다 훨씬 더 위대한 업적을 남기셨고, 그 외에도 많은 성과를 낸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저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여러 동료들 사이에서 상당히 생산적인 성과를 낸 편에 속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분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왜 그렇게 유망했던 많은 사람들이 결국에는 실패하게 되는 걸까요?

1. 열의와 헌신의 부족

그 이유 중 하나는 열의와 헌신입니다. 능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일에 진심으로 몰입하고 헌신하는 분들이, 탁월한 기술을 갖고 있지만 그저 취미 삼아 일하는 분들보다 더 많은 성과를 냅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 퇴근 후에는 다른 일을 하며, 다음 날 다시 출근해서 또 일하는 방식으로는, 진정한 일류의 작업에 필요한 깊은 몰입과 헌신을 이끌어내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분들도 물론 좋은 결과물을 많이 내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좋은 작업”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일류의 작업”, 즉 노벨상을 받을 만한,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수준의 연구입니다.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훌륭한 분들, 재능 있는 분들은 대부분 언제나 좋은 연구를 해내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것은 바로 특출난 연구, 즉 진짜 탁월한 업적입니다.

2. 시스템의 거부

두 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제 생각에 개인의 성격적 결함이라는 문제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제가 얼바인에서 만난 한 분의 사례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그분은 한때 컴퓨터 센터의 책임자였고, 당시에는 대학 총장7의 특별 보좌관으로 임시 파견되어 계셨습니다. 겉보기에는 아주 밝은 미래가 보장된 자리였습니다.

어느 날 그분이 저를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가셔서, 본인의 업무 방식—특히 편지를 처리하는 방식—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는 비서가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지적하면서, 자신이 직접 모든 편지를 어떻게 정리하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를 다 파악하고 있다고 자랑하셨습니다. 워드 프로세서를 사용해 직접 편지를 작성하고, 비서의 간섭 없이 훨씬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매우 만족해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분이 없는 자리에서 조용히 비서와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그 비서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제가 도와드릴 수 없죠. 그분이 우편물을 제게 주시지 않거든요. 수신 기록을 남길 수도 없고, 도대체 그 많은 서류를 어디에 놓으시는지도 몰라요. 당연히 도움을 드릴 수가 없죠.”

그래서 저는 그분에게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지금처럼 모든 것을 혼자 하시겠다면, 결국 혼자 할 수 있는 수준까지만 가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시스템과 협력하는 법을 배우신다면, 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까지, 즉 훨씬 더 멀리 가실 수 있습니다.”

결국 그분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통제하려는 성격적 결함, 그리고 시스템의 도움 없이는 큰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셨던 것, 그것이 발목을 잡은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훌륭한 과학자들 중에도, 시스템과 협력하는 법을 배우기보다, 시스템과 맞서 싸우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스템은 잘만 사용하면 매우 많은 것을 제공해줍니다.

물론 인내심이 필요하지만, 시스템을 잘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고 나면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법도, 때로는 우회하는 요령도 익히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만약 어떤 일에 대해 “안 됩니다”라는 답을 듣고 싶으시다면, 그냥 상사에게 가서 허락을 구하면 됩니다. 그러면 아주 손쉽게 “안 됩니다”라는 대답을 받게 되실 겁니다. 하지만 정말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시다면, 묻지 말고 그냥 실행하십시오. 기정사실로 만들어서 보고드리십시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라는 말을 들을 기회조차 상사에게 주지 않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안 된다”는 답은 정말 구하기 쉬운 것입니다.

3. 자아 과시

또 하나의 성격적 결함은 자아를 드러내려는 태도, 즉 자아 과시입니다. 이번에는 제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이 이야기를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로스앨러모스에서 근무하다가 뉴욕 매디슨 애비뉴 590번지에 있는 컴퓨터를 사용하러 다니곤 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시간 단위로 컴퓨터를 임대해서 쓰고 있었고, 저는 여전히 서부 스타일의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큼직한 포켓이 달린 재킷, 볼로 타이8, 그런 차림이었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제가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측정을 해보았습니다. 그곳에선 와서 대기표를 받고 순서를 기다리는 방식이었는데, 저는 공정한 순서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IBM의 어떤 부사장이 ‘해밍을 불편하게 하라’고 지시했을 리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건 아래쪽, 즉 접수를 담당하는 비서들 쪽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빈 자리가 생기면 누군가를 끼워 넣어야 하는데, 나보다는 다른 사람을 찾아 넣고 있다. 왜일까? 내가 그들에게 무례하게 대한 적도 없는데.”

그리고 결국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 어울리는 복장을 하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로 그 점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옷을 입겠다는 고집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그렇게 하느라 내 전문적인 노력에서 에너지가 계속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겉모습만이라도 좀 더 ‘평범하게’ 보이도록 바꿀 것인가.

결국 저는 겉보기로나마 제대로 된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하자고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훨씬 나은 서비스를 받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나이가 들면서 개성 있는 인물로 인식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좋은 대우를 받기도 합니다.

여러분께서도 청중이 기대하는 방식에 맞게 옷을 입으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 MIT 컴퓨터 센터에서 강연을 하게 된다면, 저는 볼로 타이와 낡은 코듀로이 재킷 같은 걸 입고 갑니다. 중요한 건, 옷차림이나 겉모습, 태도가 내가 진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과학자들은 “나는 나만의 방식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만의 옷, 자신만의 말투, 자신만의 태도를 고집하려 하고, 그 대가를 끊임없이 치르며 살아갑니다.

존 튜키는 거의 항상 매우 캐주얼한 복장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는 중요한 회의나 사무실에 들어가도, 상대방이 “이 사람이 일류 전문가구나, 말을 들어야겠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곤 했습니다. 존 튜키는 오랫동안 이런 종류의 적대감과 싸워야 했습니다. 이건 말 그대로 낭비되는 노력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무조건 순응하라고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겉보기라도 순응하는 듯한 태도가 여러분을 훨씬 수월하게 만들어 준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자아를 드러내는 방식, 즉 “나는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할 것이다”라는 태도를 계속 고수하신다면, 여러분은 경력 전체에 걸쳐 작지만 지속적인 비용을 계속 지불하시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누적된 비용은 결국 인생 전체를 통틀어 엄청난 양의 불필요한 고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저는 평소에 비서들에게 농담도 건네고, 조금씩 친절을 베풀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 덕분에, 정말 훌륭한 비서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한 번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유 때문인지 머레이 힐(Murray Hill)9의 인쇄 서비스 전체가 마비된 적이 있었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지금도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꼭 문서를 인쇄해야 했습니다.

제 비서는 바로 홀름델(Holmdel)10의 인쇄실에 전화를 걸어 인쇄를 부탁했고, 회사 차량을 타고 한 시간이나 걸려 직접 그곳에 가서 문서를 인쇄한 뒤,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건 분명히, 제가 평소에 그녀에게 농담도 해주고 기분을 북돋워 주려 했던 노력에 대한 보답이었습니다. 그런 작은 친절이, 결국 저를 도와주는 더 큰 보답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시스템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배우고, 시스템이 여러분의 일을 대신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익히게 되면, 시스템을 여러분의 의도에 맞게 적응시킬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시스템과 끊임없이 싸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평생 동안 선언되지 않은 전쟁을 지속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저는 존 튜키가 그런 방식으로 불필요한 대가를 많이 치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는 본래 천재였지만, 조금만 더 순응하는 태도를 가졌더라면 훨씬 더 수월하고 나은 길을 걸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항상 본인이 원하는 방식대로 옷을 입었고,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복장 문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사소한 부분들에 적용됩니다. 많은 분들이 시스템과 싸우는 태도를 계속 유지하곤 합니다. 물론, 때로는 싸워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늘 그런 자세로 임한다면, 여러분의 길은 훨씬 더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머레이 힐 연구소에서 도서관을 건물 중앙에서 한쪽 끝으로 옮겼을 때의 일입니다. 제 친구 한 명이 자전거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11. 그런데 그 조직은 결코 어리석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그들은 연구소 부지의 지도를 보내오며 이렇게 요청했습니다. “자전거를 이용하실 경로를 지도에 표시해 주시겠습니까? 보험에 가입하려면 해당 경로가 필요합니다.” 또 몇 주가 지나자 이번에는 이렇게 물어왔습니다. “자전거는 어디에 보관하실 계획입니까? 어떻게 자물쇠를 채우실 건가요? 우리가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그 친구는 마침내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는 끝없이 서류 작업에 시달리겠구나.’ 결국 그는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나중에 벨 연구소의 사장까지 올랐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는 바니 올리버(Barney Oliver)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IEEE12에 편지를 쓴 적이 있습니다. 당시 벨 연구소에서는 책장의 공식적인 칸 높이가 정해져 있었는데, IEEE에서 발간하는 학술지의 높이는 그보다 컸습니다. 칸의 높이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는 IEEE 출판 담당자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은 편지를 썼습니다. “벨 연구소에는 IEEE 회원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곳의 책장 높이에 맞지 않으니, 저널의 판형을 조정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는 이 편지를 상사의 결재를 받아 발송하려 했습니다. 결국 상사의 서명이 담긴 복사본은 받았지만, 그 편지가 실제로 발송되었는지는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드리는 이유는, 개혁적인 제안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제가 관찰한 능력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그런 종류의 ‘싸움’에 모든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가볍게 참여하고, 적절한 시점에 내려놓고, 자기 본연의 일을 계속합니다.

많은 이류 연구자들이 시스템의 사소한 문제에 집착하다가, 결국 그것을 큰 싸움으로 키우곤 합니다. 그들은 소중한 에너지를 어리석은 일에 낭비하고 맙니다. 물론 여러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누군가는 시스템을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씀, 저도 동의합니다. 누군가는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시스템을 바꾸는 사람이 되시겠습니까, 아니면 일류 과학자가 되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 스스로 분명히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시스템과 싸우고, 갈등을 겪고 있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 싸움을 얼마나 ‘즐길’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그런 방향으로 쓸 것인지를 냉정하게 따져보셔야 합니다.

제 조언은 이렇습니다. 시스템 개혁은 다른 누군가에게 맡기시고, 여러분은 일류 과학자가 되기 위한 길에 집중하시라는 겁니다. 시스템을 개혁하면서 동시에 일류 과학자가 되는 분은 매우 드뭅니다. 여러분 대부분은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물론, 반대로 항상 물러서고 포기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는, 어느 정도의 반항과 저항이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거의 모든 과학자들은, 단지 재미 삼아서라도 시스템에 ‘딴지 걸기’를 일정 부분 즐깁니다.

결국 중요한 건 이것입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독창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면에서도 독창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독창성이란 결국 ‘다름’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부분에서만 완전히 독창적이고, 나머지는 완전히 순응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과학자들이 자기 고유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그 만족을 위해 꼭 필요하지 않은 수준 이상의 대가를 치르곤 합니다. 저는 자아를 드러내는 것을 모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중 일부에 대해서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4. 화

또 다른 문제는 ‘화’입니다. 과학자들은 종종 화를 내곤 하지만, 그것이 일을 처리하는 올바른 방법은 아닙니다. 즐겁게 일하는 것이지, 화를 내는 것이 아닙니다. 화는 방향이 잘못된 감정입니다. 시스템과 끊임없이 투쟁하기보다는, 따르고 협력하는 쪽이 현명합니다.

여러분이 찾아야 할 것은 부정적인 면이 아니라 긍정적인 면입니다. 제가 이미 여러 예를 보여드렸지만,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사례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주어진 상황에서 관점을 바꾸어, 명백한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주요한 자산으로 바꿀 수 있는지 말입니다.

스스로를 잘 활용하는 법

다른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저는 자존심이 강하고 소신 있는 사람입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구년을 보내며 책을 쓰지만, 시간 내에 끝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연구년을 떠나기 전에 모든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돌아오기 전에 책을 반드시 끝낼 거다!” 그렇습니다. 반드시 마쳐야 했습니다. 만약 마치지 못하고 돌아오면 부끄러울 테니까요.

저는 제 자존심을 이용해 스스로를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미 자랑을 하고 다녔기 때문에 반드시 해내야 했던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마치 궁지에 몰린 쥐처럼 놀랄 만큼 뛰어난 능력이 발휘되었습니다. “그래, 화요일까지 답을 낼게.”라고 말하면, 실제로는 답을 내는 방법이 없었더라도, 일요일 밤까지 온 힘을 다해 그 답을 낼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이렇게 자존심을 동력으로 삼아 스스로를 몰아붙였고, 비록 가끔 실패하기도 했지만, 마치 궁지에 몰린 쥐처럼 종종 좋은 결과를 냈습니다. 여러분도 스스로를 잘 활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또한 상황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법을 익혀,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끝내며

사람들이 스스로를 속이는 일은 매우 흔합니다. 무수히 많은 방법으로 자신을 기만하고, 상황을 다르게 보이게 만듭니다. “왜 이런 일을 하지 않았나요?”라고 물으면, 수천 가지 알리바이가 나옵니다.

과학 역사를 보면, 오늘날 대략 열 명 정도가 동시에 같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그중 ‘가장 먼저 성과를 낸 사람’만 주목합니다. 나머지 아홉 명은 “내가 그 아이디어를 가졌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실행하지 못했다”라고 말합니다. 핑계는 너무나 많습니다.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왜 먼저 하지 않았나요? 왜 제대로 해내지 못했나요? 핑계나 알리바이를 만들지 마십시오. 스스로를 속이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떤 알리바이라도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에게만은 솔직하고 진실되십시오.

정말로 일류 과학자가 되기를 원하신다면, 먼저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약점과 강점, 그리고 나쁜 단점까지도 말입니다. 저의 경우라면 자존심과 소신을 내세우는 그런 단점이 있지요.

그 단점을 어떻게 자산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가야 할 방향은 분명히 알지만, 그쪽으로 나아갈 충분한 인력이 없는 상황을 어떻게 긍정적인 상황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요?

제가 역사를 공부하며 목격한 바에 따르면, 성공한 과학자들은 관점을 바꾸어 버립니다. 그리고는 그 단점이었던 것을 자산으로 만들어 버리지요.

정리하겠습니다. 출중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하는 과학자들이 많은 이유는 몇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중요한 문제에 몰두하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 감정적으로 깊이 관여하지 않기 때문이며, 셋째, 어려운 점들을 바꾸어 쉽게 다룰 수 있으면서도 중요한 방향으로 전환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넷째, 자신이 하지 않은 이유를 늘 알리바이로 합리화한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자주 “운이 좋아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말씀드렸듯이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정말 쉽습니다. 더욱이 어떻게 문제를 바꾸고 전환할지도 함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 이제 나아가십시오. 위대한 과학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이것으로 공식 발표 부분을 마치겠습니다.)

논의 - 질의 응답

알랜 치노웨쓰(Alan Chynoweth): 정말 대단한 경력을 통해 쌓은 지혜와 관찰의 정수를 50분 동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내용들이 모두 제 머릿속에 떠오르네요. 어떤 부분은 지금도 딱 맞아떨어지는 이야기였습니다. 예를 들어 컴퓨터 용량 확충에 대한 요구 말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여러 사람들로부터 바로 그런 요청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20~30년 전에 비슷한 요구가 있었는데, 지금 우리가 여기 서 있네요. 여러 가지 교훈을 이번 강연에서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연구소 복도를 걸을 때 벨코어(Bellcore)에 닫힌 연구실 문이 많지 않길 바랍니다. 참 흥미로운 관찰이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딕. 멋진 회고였습니다. 이제 질문을 받겠습니다. 딕이 말한 요점들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은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해밍: 우선 컴퓨터 용량 문제에 대해 알랜 치노웨쓰의 말씀에 답변드리겠습니다. 연구 부서에 컴퓨터 시설이 있었는데, 10년 동안 윗선에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저 기계를 연구 부서에서 치워 주세요. 우리는 계속 다른 사람들 문제를 컴퓨터에 돌리느라 연구할 시간이 없습니다. 컴퓨터를 운영하고 돌리느라 너무 바쁩니다.” 이 얘기가 결국 윗선까지 전달되었고, 컴퓨터 설비를 연구 부서 밖으로 옮기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좋지 않았죠. 말하자면, 저는 연구 장난감을 뺏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장난감이 없어지니 모두가 저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더군요.

저는 애드 데이비드(Ed David) 사무실에 찾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연구원들에게 컴퓨터를 줘야 합니다. 너무 큰 컴퓨터를 주면 이전과 똑같이 될 것입니다. 작동하느라 바빠서 연구할 시간이 없게 되겠지요. 가능한 가장 작은 컴퓨터를 주세요. 그들은 능력 있는 사람들이니, 큰 컴퓨터 작업 대신 작은 컴퓨터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이것이 바로 UNIX가 탄생한 과정입니다. 적당히 작은 컴퓨터를 주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이용해 엄청난 일을 해냈습니다. 그걸 가능하게 한 시스템이 바로 UNIX입니다.

알랜 치노웨쓰(Alan Chynoweth): 그 대목에 대해 한마디 덧붙이고 싶습니다. 요즘 우리가 처한 상황도, 딕, 각종 규제기관 때문에 생기는 복잡한 행정절차나 관료적 규정들과 씨름하고 있는데요13, 그 와중에 한 분이 화가 나서 한 말을 제가 지금까지도 자주 인용합니다. 그 부소장보가 씩씩대며 이렇게 말했어요. “UNIX는 원래 소비자한테 전달될 상품이 아니었단 말이야!”


질문: 스트레스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스트레스가 성과에 영향을 주는 걸까요?

해밍: 예, 영향을 줍니다. 감정적으로 몰입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벨 연구소에 있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위궤양 초기 증상을 달고 살았습니다. 그 후 해군 대학원으로 옮기고 나서 조금 여유를 갖게 되었고, 지금은 건강이 훨씬 좋아졌지요. 하지만, 위대한 과학자가 되고 싶다면 스트레스를 감수해야 합니다.

물론 좋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누구나 ‘좋은 사람’으로 살거나, ‘위대한 과학자’로 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어요. 하지만 ‘좋은 사람’은 결국 꼴찌로 남게 됩니다. 레오 듀로셔(Leo Durocher)14가 한 말이지요. 만약 여유롭고 행복한 삶, 여가와 즐거움이 가득한 인생을 원한다면, 그 길을 가면 됩니다. 그러나 위대한 과학자가 되고 싶다면 그만큼의 대가를 치를 각오가 필요합니다.


질문: 용기를 가지라는 말씀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처럼 이미 자리를 잡고 머리가 희끗한 사람들은 그렇게 큰 걱정을 하지 않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은 극도로 경쟁적인 환경 속에서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 자체를 굉장히 두려워하고, 거기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혹시 그들에게 해줄 만한 지혜의 말씀이 있으실까요?

해밍: 그 점에 대해 에드 데이비드(Ed David)의 말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그는 우리 사회 전반이 담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 걱정했어요.

우리는 사실 꽤 특별한 시대를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2차 세계대전을 겪고, 로스앨러모스에서 원자폭탄을 만들었고, 또 레이더 시스템을 개발하는 일을 하면서, 우리는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걸 똑똑히 목격했지요. 그리고 그 경험을 가지고 벨 연구소의 수학 부서와 연구 부서로 들어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배짱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전쟁에서 이긴’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엄청난 성취였고, 그만큼 우리에게는 용기를 가질 이유가 분명히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었고, 실제로 해냈습니다.

그런 상황을 다시 인위적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요즘 세대가 그것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해서 그들을 탓할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방금 질문하신 내용에는 동의합니다.

지금 세대가 위대해지고자 하는 욕구가 부족해 보이고, 그것을 실현할 용기도 부족해 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달랐지요. 우리는 용기를 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었고, 그 경험이 우리에게 자극과 자신감을 준 겁니다.

전쟁 동안 한동안 상황이 정말 암울했지요. 아주 오랫동안 우리가 밀리고 있었고, 절박한 싸움이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이겼습니다. 그 승리는 우리에게 큰 자신감과 용기를 심어주었고, 바로 그것이 1940년대 말부터 50년대까지 벨 연구소에서 엄청난 연구 성과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고 봅니다.

당시 우리는 원하지 않는 것을 강제로 배워야 했습니다. 강제로 문을 열어놓고, 내가 싫어하는 분야까지 공부하고, 서로 엮이게 되었어요.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결국 다양한 관점과 기술들을 쓸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죠.

이건 그냥 사실입니다. 그런 맥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고, 오늘날의 세대가 그런 용기를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일 뿐입니다.


질문: 브레인스토밍은 매일 해야 하는 일인가요?

해밍: 한때는 꽤 유행했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좋은 성과를 낸 것 같지는 않아요. 제 경우에는, 선택적으로, 특정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게 훨씬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대체로 정식으로 브레인스토밍 세션을 열면 별로 소득이 없었어요. 대신 저는 누군가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죠: “봐요, 뭔가 여기에 중요한 게 있을 것 같아요. 내가 보기에 이렇고 저렇고…” 그렇게 상대와 왔다 갔다 말 주고받으면서 아이디어가 구체화되는 거죠.

그런데 중요한 건 그 말을 나눌 사람을 잘 골라야 한다는 겁니다. 비유를 하나 들자면, ‘임계 질량(critical mass)’이라는 개념이 있죠. 충분한 질량이 모이면 반응이 일어나듯, 아이디어도 그런 임계량이 필요해요. 그런데 문제는 제가 “소리 흡수기(sound absorber)” 라고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면, 그냥 “그래 맞아, 응, 좋네”만 하죠. 아이디어는 거기서 끝나버립니다. 더 이상 반응이 없습니다.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죠. “그 얘기 들으니 이게 떠오르는데”, “그거랑 관련해서 이런 생각 해봤어요?” 이렇게 피드백이 오는 사람들, 그게 진짜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생산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신중하게 골랐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아이디어가 그냥 거기서 죽어요. 아무도 메아리를 주지 않으니까요.

예를 하나 들자면, 존 피어스(John Pierce)랑 대화를 나누면 항상 뭔가 자극을 받았습니다. 또 에드 길버트(Ed Gilbert)라는 분도 있었는데, 그 분 연구실에는 주기적으로 찾아가서 질문하고, 이야기 듣고, 자극받아서 다시 돌아오곤 했어요.

‘소리 흡수기’ 역할만 하는 사람들 — 그냥 착하고, 나이스한 사람들 — 그들은 아이디어를 그냥 흡수만 합니다. 공헌은 없고, 새 아이디어들이 퍼지지도 못하고 사라지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일종의 저주예요.

그러니 저는 말이 통하고 자극을 주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려고 애를 씁니다. 문을 닫고 지내는 사람들은 이런 걸 하지 않아요. 그래서 자기 아이디어를 날카롭게 다듬지를 못합니다.

예를 들면, 누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죠: “이 근처에 이런 거 본 적 있어요?” 전혀 몰랐던 이야기죠. 그러면 가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길을 가리켜주면, 그 길을 따라가 보는 거죠.

지금 여기 와서도, 돌아가서 읽어야 할 책 몇 권을 이미 찾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저는 새로운 단서를 줄 수 있을 만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스스로 질문하고, 이야기하고, 찾으러 다닙니다.


질문: 논문 읽기, 쓰기, 그리고 실제 연구하는 일 사이에 시간을 어떻게 배분하셨나요?

해밍: 처음 연구를 시작했을 때는, 오리지널한 연구에 쓴 시간만큼 발표 준비에도 써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지금은 최소한 제 시간의 절반은 연구 결과를 어떻게 잘 발표하느냐에 씁니다. 정말로 큰 비중입니다.


질문: 논문 읽는 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을 써야 적당하다고 생각하시나요?

해밍: 그건 분야마다 다릅니다. 이와 관련해서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벨 연구소에 아주 똑똑한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항상 도서관에 있었어요. 세상 모든 걸 다 읽는 것 같았죠. 누가 참고 문헌이 필요하면, 다들 그 친구한테 가면 됩니다. 원하는 건 다 알려줘요.

하지만 그에 대한 제 초기 판단은 이랬습니다: ‘이 사람 이름을 딴 이론이나 효과는 결국 하나도 남지 않겠구나.’

지금 그는 벨 연구소에서 은퇴하고 대학에서 겸임교수로 있습니다. 그의 기여는 분명 컸습니다. 훌륭한 Physical Review 논문들도 몇 편 썼고요. 하지만 그 이름이 붙은 개념이나 이론은 없습니다. 왜냐면, 너무 많이 읽었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이 읽으면, 결국 다른 사람들이 했던 생각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 새로운 생각을 하고 싶다면, 창의적인 사람들이 하는 방식대로 해야 합니다.

문제를 어느 정도 분명히 파악하고, 아무런 답도 보기 전에,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볼지, 또는 어떻게 문제를 살짝 바꿔야 풀만한 문제가 되는지, 스스로 생각해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정리하면, 다른 사람의 논문을 읽는 건 ‘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서 읽는 것이어야 합니다.

논문 읽기는 당연히 필요합니다. 지금 무슨 일이 진행 중인지, 어떤 일이 가능한지를 알려면 읽어야죠. 하지만 해답을 찾기 위해서 읽는 것만으로는 위대한 연구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 대답은 두 가지입니다: 읽으세요. 하지만 얼마나 읽느냐보다, 어떻게 읽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질문: 어떻게 해야 연구 결과에 자기 이름을 붙일 수 있나요?

해밍: 위대한 일을 해야 합니다. 제가 해밍 윈도우(Hamming window)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 하지요.

제가 튜키에게 꽤 여러 번 딴지를 걸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프린스턴에서 머리 힐(Murray Hill)에 있는 저에게 전화를 걸어왔어요. 그가 파워 스펙트럼(power spectra)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그 전화에서 이렇게 묻더군요: “이 창(window)을 ‘해밍 윈도우’이라고 불러도 되겠나?”

그래서 제가 말했죠. “이봐 존, 나도 아는데, 그 일에서 내가 한 건 아주 작은 부분이고, 대부분의 일은 당신이 했잖아.”

그러자 존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해밍. 하지만 너는 여러 작은 기여들을 많이 했어. 그 정도면 어느 정도의 인정을 받을 자격이 있어.”

그래서 결국 그가 그 창을 해밍 윈도우(Hamming window)이라고 부르게 된 겁니다.

조금 더 이야기를 하자면, 제가 존에게 자주 이런 식으로 놀리곤 했어요. “진짜 위대한 사람은 이름이 ‘Ampere’, ‘Watt’, ‘Fourier’처럼 소문자로 쓰일 때야.”

그런 맥락에서 결국 Hamming window가 탄생하게 된 겁니다.


질문: 딕, 세미나(강연), 논문 쓰기, 책 쓰기 — 이 세 가지의 상대적인 효과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해밍: 짧게 보면, 내일 누군가를 자극하고 싶으면 논문 쓰는 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길게 보고 인정을 받고 싶다면 책을 쓰는 것이 더 큰 공헌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향 설정이 필요하거든요. 특히 지금처럼 사실상 무한한 지식의 시대에는 우리가 나아갈 길을 알려주는 방향타가 필요합니다.

“무한한 지식”이 어떤 것인지 말씀드리죠. 뉴턴 시대부터 지금까지, 대략 17년마다 지식의 양이 두 배씩 증가해 왔습니다. 우리는 그에 대한 대응으로 전문화를 택해 왔지요.

그런데 이 속도로 앞으로 340년을 더 가게 되면, 20번의 두 배 증가, 즉 지금보다 100만 배의 지식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결국 지금의 한 학문 분야가 100만 개의 세부 분야로 나뉘게 되는 셈이죠.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현재와 같은 지식의 팽창은 결국 스스로 질식해서 멈추게 될 것입니다 — 우리가 다른 도구나 방식을 가지지 않는 한은요.

그래서 저는 책을 쓴다는 것, 즉 지금 우리가 아는 것을 정리하고, 조율하고, 중복을 제거하고, 덜 유익한 방법은 없애고, 그 아래 깔린 핵심 아이디어를 명료하게 전하는 작업이 앞으로 미래 세대에게 가장 가치 있는 기여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

물론, 대중 강연도 필요하고, 개인적 대화도 필요하고, 논문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저는 장기적으로 보면, 모든 걸 다 알려주는 책보다는 핵심만 남기고 불필요한 것을 제거한 책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모든 걸 다 알고 싶어 하지 않거든요. 예를 들어, “펭귄에 대해 그렇게 많이 알고 싶지 않아” — 이런 대답이 대부분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핵심, 본질이지요.


질문: 노벨상과 같은 명성과 그 이후에 따라오는 캐리어의 문제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그것은 사실 훨씬 더 포괄적인 ‘명성의 문제’ 아닌가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해밍: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대략 7년마다, 상당한 정도로 — 아니면 아예 완전히 — 연구 분야를 바꾸는 겁니다.

그래서 저도 수치해석에서 하드웨어, 또 소프트웨어로 계속 주기적으로 분야를 옮겨갔습니다. 왜냐하면, 한 분야에서 아이디어는 언젠가 고갈되기 마련이거든요. 새로운 분야로 가면 마치 아이가 된 것처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그 순간엔 더 이상 거물이 아니고, 다시 뒷줄에서 시작해야 하죠. 하지만, 거기서부터 커다란 참나무로 자랄 도토리를 심는 일이 시작되는 겁니다.

이와 관련해 섀넌 얘기를 하자면, 제 생각엔 그는 스스로 자신의 연구 인생을 접었다고 봅니다. 실제로 그가 벨 연구소를 떠날 때, 제가 말했어요: “섀넌의 과학자로서의 커리어는 이제 끝났구나.”

주변 친구들은 저에게 “아니야, 섀넌은 여전히 똑똑해.” 라고 했지만, 저는 이렇게 대답했죠: “맞아, 그는 여전히 똑똑할 거야. 하지만 과학자로서의 커리어는 끝난 거지.” 저는 지금도 그렇게 진심으로 믿고 있습니다.

변화가 필요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지루해지고, 독창성도 점차 소모됩니다. 그래서 가까운 이웃 분야로라도 옮겨야 합니다.

제가 말하는 건, 음악에서 물리학으로, 혹은 영문학으로 옮기라는 게 아닙니다. 자기 분야 안에서라도 전문 주제를 바꾸고, 발전 없이 멈춰 있는 것을 피하라는 겁니다.

“매 7년마다 바꾸자”는 건 실천이 어려울 수 있지만, 가능하다면 연구 조건 중 하나로 삼고 싶을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 10년이 지나면 연구관리부서에서 강제로라도 분야를 바꿀 권리를 갖도록 하자는 거죠.

왜냐하면 나이든 연구자들이 종종 빠지는 함정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익숙한 기술을 계속 쓰고, 과거에 옳았던 방향으로만 묵묵히 행진을 계속하죠. 하지만 세상은 변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방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익숙한 사람일수록 과거의 방향만 고집하게 됩니다.

새로운 관점을 얻고 싶다면 새로운 분야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전 관점을 다 써버리기 전에 말이지요.

이건 노력과 에너지가 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용기도 필요하죠: “그래, 나는 내가 쌓아온 명성을 내려놓겠다.”

예를 들어, 오류정정코드(error correcting code) 연구가 잘 진행되고 이론이 자리잡았을 때, 제가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해밍, 이 분야의 논문은 더 이상 읽지 마. 완전히 무시하고, 다른 걸 해보자. 이 분야에 계속 매달리는 대신, 뭔가 새롭고 다른 걸 시도해보자.”

저는 의도적으로 그 분야에서 떠났습니다. 심지어 논문조차 일부러 읽지 않았어요. 새로운 분야를 위한 여지를 스스로 만들기 위해서요.

그게 바로 제가 이 강연 전체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입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저는 결점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문제도 많지요. 그 말은 곧, 관리할 여지도 많다는 뜻입니다. 결국 중요한 건, 자신을 알고, 스스로를 경영하는 것입니다.


질문: 연구와 연구관리를 비교해 주시겠어요?

해밍: 당신이 위대한 과학자가 되고 싶다면, 회사 회장이 되어서는 그 목표를 이룰 수 없습니다. 반대로, 회장이 되고 싶다면 그건 완전히 다른 길이에요.

물론 저는 회장직에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단지 제가 되고 싶지 않았을 뿐이죠. 예를 들어, 이안 로스(Ian Ross)는 벨 연구소 소장으로서 훌륭하게 일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직책 자체에는 아무런 반감도 없어요. 중요한 건,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게다가, 젊었을 때는 위대한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가 살아가면서 그 마음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한 번은 제 상사였던 보드(Bode)에게 물었죠. “왜 부서장이 되셨습니까? 그냥 훌륭한 과학자로 계시지 왜 관리자가 되셨어요?”

그의 대답이 이랬습니다: “해밍, 나는 벨 연구소 안에서 수학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비전이 있었어. 그리고 그 비전을 실현하려면, 내가 부서장이 되어야 했지.”

당신의 비전이 혼자서 이룰 수 있는 크기라면, 당연히 혼자 힘으로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 비전이 개인의 힘만으로는 부족한 규모라면, 자연스럽게 관리 쪽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그리고 비전이 더 크면 클수록, 그걸 실현하려면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연구실 전체” 혹은 “벨 시스템 전체”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한다 는 큰 비전이 있다면, 그걸 실현할 수 있는 위치까지 가야 하지요. 바닥에서 그걸 이루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당신의 목표와 열망이 무엇이냐에 따라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건 살면서 바뀔 수도 있고, 바뀐다면 본인도 변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저는 관리직을 피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것이 저에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그건 제가 한 선택이고, 편향된 선택입니다. 각자는 자신의 선택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마음을 항상 열어두세요. 그리고 어떤 길을 선택했다면, “내가 지금 어떤 선택을 했는지”, “내가 지금 무엇을 하려는 건지” 를 반드시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양쪽 다 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건 제대로 안 됩니다.


질문: 스스로의 기대수준이 얼마나 중요한 건가요? 그리고 내가 엄청난 일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그룹이나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얼마만큼 중요한 걸까요?

해밍: 벨 연구소에서는 모든 사람이 내가 좋은 일을 하기를 기대하였습니다. 이것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나에 대해 좋은 일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면, 자존심이 있다면 그렇게 하게 됩니다.

저는 주변에 일류급 사람들이 있는 것이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최고의 사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물리학자들의 점심 테이블에서 좋은 사람들이 없어졌다고 생각했을 때 저는 그 테이블을 떠났습니다. 화학자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 순간에 저는 그 테이블을 떠났습니다. 저는 엄청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있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저는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었고, 그들은 저에게서 엄청난 일들을 기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스스로를 관리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냥 내버려두는 방식보다는 더 잘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말씀 서두에, 행운에 대해서 작게 생각하고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하셨는데요, 그리고 로스앨라모스 연구소로 가게 된 상황이나 시카고로 가게 된 것, 그리고 벨 연구소로 가게 된 경위들에 대해서는 별 말씀 없이 넘어가신 듯 한데요.

해밍: 어느 정도 행운이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다른 경우들을 모르는 것이지요. 다른 경우들이 똑같거나 혹은 더 성공적이지는 않았을 거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면 제가 말하겠지만, 제가 말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특정한 일을 하는 것이 운 때문일까요?

예를 들어, 제가 파인만을 로스앨러모스에서 만났을 때, 그는 노벨상을 받을 거라고 알았어요. 무엇으로 받을지는 몰랐지만, 저는 분명히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엄청난 일을 할 것이라는 것을요. 미래에 어느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든, 이 사람은 위대한 일을 할 거라는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정말 위대한 일을 했지요.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약간 위대한 일을 하고 그것이 행운인 것은 아닙니다. 그런 데서는 곧 지나면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있으면 기회로 가득 찬 통들이 주변에 있게 되지요. 그래서 그 중 하나를 잡고 여기보다는 저기서 엄청난 성과를 내게 되는 것입니다.

행운의 요소가 있다는 것은 긍정도 부정도 가능합니다. 행운은 준비된 마음으로 찾아옵니다; 행운은 준비된 사람을 선호합니다.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완전히 확실하게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말씀드리지요. 행운은 확률을 바꿔주지만, 개인이 분명히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가십시오, 이제 그러니, 그리고 위대한 일을 하십시오!


  1. Bell Communications Research, 435 South Street, Room 2E-354, Morristown, NJ 07980, USA ↩︎

  2.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

  3. 맨하탄(Manhattan) 프로젝트로 불린다. 2차 세계대전중 미국이 핵폭탄을 제작하기 위해 미국내 제일가는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차출해 뉴멕시코(New Mexico)주의 로스앨러모스(Los Alamos)의 비밀 기지에 모아 연구개발을 맡겼다. 여기서 나온 핵폭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지게 된다. ↩︎

  4. 머래이 힐(Murray Hill)에 있는 벨 연구소의 빌딩은 1자형의 아주 긴 건물이다. 그 건물의 중앙 1층에 식당이 있었고, 2층에는 도서관, 그리고 그곳 어디엔가 있었던 제일 큰 강당이 아놀드 강당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벨 연구소 연구원 전체를 대상으로하는 대형의 주요 강연이 열렸다.
    이곳에서 내가 인상깊게 들은 강연이 기억난다. 미국 과학기술의 현재를 있게한 과학기술문화사에 대한 강연이였다. 미국이 유럽을 따라잡기 위해서 대학교육 시스템을 만들면서 선택한 과학기술교육의 모델에 대해서였다. 미국으로 유학한 많은 사람들이 그냥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미국식 교육의 모델이다. 이것이 그 사람들이 궁리끝에 디자인하고 구현한 시스템이란 것이었다: (1) 잘 짜여진 교과과정을 통해 다수의 학생에게 좋은 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2) 교수, 대학원생, 학부생 구분없이 같은 웍크벤치에 모여 연구하게하는 벽없는 문화. 새삼, 우리는 궁리하고 디자인하고 구현하고 있는가, 혹은 맹목적으로 따라만 하고 있는가,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해 하고 있는가, 등을 생각하게 된다. ↩︎

  5. 벨 연구소(Bell Labs)는 AT&T산하의 연구개발 조직이었다. 1990년대 중후반 AT&T에서 Lucent Technologies가 분리되면서 AT&T Research 와 Lucent Technologies 산하의 Bell Labs로 나누어졌다. 지금은 예전의 연구중심으로서의 Bell Labs의 명성이 거의 사라졌다. 적어도 컴퓨터과학 분야는 그렇다. 하지만, 미국사회에서는 같은 역할을 하는 다른 연구조직들이 거대한 이윤을 창출하는 회사주변에서 항상 만들어 지고 있다. Microsoft나 Google등. ↩︎

  6. 2차 대전중 독일이 핵융합에 먼저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은 미국측이 원자폭탄제조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로스앨러모스(Los Alamos)에서 진행된 맨하탄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가 그것이다. ↩︎

  7. University of California at Irvine을 뜻하는 듯. ↩︎

  8. 볼로 타이(bolo tie) ↩︎

  9. 벨 연구소의 순수 연구부서들이 대부분 모여있는 브랜치가 미국 뉴저지(New Jersey)주의 머래이 힐(Murray Hill)이다. “벨 연구소"의 명성이 만들어지는 곳이었다. 넓은 언덕위에 거대한 건물 하나가 가로로 길게 늘어서 있다. 이 메인 빌딩을 중심으로 가지 친 빌딩들이 있지만 모두 하나로 연결되 있다. 통칭 벨 연구소는 10개가 넘는 브랜치가 뉴저지(New Jersey)나 다른 지역에 있지만, 순수 연구의 본산은 머래이 힐(Murray Hill)의 벨 연구소이다. 각 부서에 번호가 붙어 있는데, 예를들어 “11217 부서"같이, 앞에 11이 붙은 부서가 순수 연구부서, 연구 핵을 담당하는 부서들이었다. ↩︎

  10. 벨 연구소의 많은 브랜치중 하나. 뉴저지(New Jersey)주 홈델(Holmdel)시에 있다. 순수 연구보다는 주로 통신관련 개발진이 모여있었다. ↩︎

  11. 머래이 힐의 벨 연구소는 하나의 일자형 긴 건물이다. 근 1마일(1.6Km)이나 된다고 농담할 정도였다. 그러니 도서관을 한쪽 끝으로 옮기면 다른 쪽 끝의 연구원들은 자전거가 필요하다고 주장할만하다. 그런데 실내에서 타고 가겠다는 건지 의아스럽다. 전체가 한 건물이였는데, 자전거를 타러 밖으로 나가겠다는 건지. 아무튼. 1993-1995년에는 도서관은 정 중앙에 있었다. 도서관 시스템이 연구원들에게 최대한 편하게 되있었다. 모든 연구원들의 방문에는 문서 박스가 두개 비치되있다. “In"박스와 “Out"박스. 모든 우편물은 물론이고, 도서관에 신청한 모든 자료는 “In"박스에 착착 도착했다. 외부로 보내는 것은 “Out"박스에 놔두면 그만이고. 논문 복사, 책등등. 매일 서너번씩 문서 수발하는 사람이 카트를 끌고 연구실 복도를 다니던 모습이 생각난다. ↩︎

  12. Institute of Electrical and Electronics Engineers의 약자. 전세계 전기,전자,통신 관련해서 선두에 있는 학회이다. ↩︎

  13. 연구소에서 이러한 배경으로 고안된 UNIX를 연구진들은 상품속에 넣어도 문제 없는 것으로 몰고 갔겠지만, 돈을 벌어야 하고 소비자를 대해야하는 윗선에서는 그것에 반대하는 전선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80년대 중반의 이야기이다. 벨 연구소측은 UNIX의 모든 소스를 대학에 공짜로 모두 전해 주었었고, 이것이 지금은 Linux의 모습으로 진화했고, 오픈 소스의 강점때문에 실제 시장의 강자로 서 있다. 국내서만 해도 정부 행정(예, 중고등학교 교육행정망등)과 은행 시스템에 속속 장착되고 있다. ↩︎

  14. 레오 듀로셔(Leo Durocher)는 상대 팀에 대해 언급하며 “Take a look at them. All nice guys. They’ll finish last. Nice guys - finish last.” 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경쟁 사회에서 순응하고 착하게 살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자기 주장을 펼쳐야 성공한다는 현실을 의미합니다. 30년대 미 프로야구 선수 출신의 그는 30년동안 뛰어난 감독이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